미미의 여행/기타 여행

2014.12.26~28 대마도 여행기 - 1일

★☆ Mimi ☆★ 2014. 12. 26. 11:25






단 첫 시작은 군침 돌만한 음식 사진부터...!

여행의 시작과 끝은 항상 풍족한 음식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이 저의 원칙이니, 일단 제가 부산에서 먹었던 회 사진을 올립니다.

26일 아침에 부산 국제항에서 대마도 - 이즈하라 항으로 향하는 배를 타기 위해

25일 크리스마스 저녁을 부산 모텔에서 지새우는 것으로 대마도 여행기는 시작됩니다. 











원래는 엄마와 아빠가 일본으로 2박 3일 여행을 떠나야 맞습니다.

그러니 피치 못하게 교사 일생에 바쁜 일정이 생김으로써 저에게 여행의 기회가 다가오더군요.

"대신 네가 갈래?"라는 반가운 질문에 저는 단번에 대마도 여행을 수락할 수밖에요.

여행에 항상 목이 말라 있는 저로서는 엄청난 기회였습니다. 그토록 가보고 싶던 일본이라니요.

여행사에서 작성하라고 제시한 입국 신고서를 손에 들고 자랑스레 여권까지 손에 들어봅니다.












부산은 항구입니다. 하루에도 수천대의 배가 출항하는 부산 국제 여객 터미널은

우리나라 제2의 항구 도시 국제항으로서 인천만큼이나 중요한 위치를 단단히 차지하고 있습니다.

검문대를 통과하자마자 나오는 Duty free zone은 부산 국제 여객 터미널을 이용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티켓을 보여준 후 쓰시마로 향할 배에 탑승하기 위해 걸어야 했던 통로에는 수십 대의 배가 출항을 위해

준비체조 하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잔잔한 물결 넘어로 아름다운 부산 도시의 모습이 보입니다.












對馬島 (대신할 , 말 , 섬 ) 라고 적힌 팻말이 눈에 띕니다.

일본의 대부분 지명은 우리나라 삼국 시대에 바다를 통한 교류가 활발했던 백제의 의해 거의 이름지어 졌는데요. 

대마도 역시 그 당시 백제에서 부르던 땅 지명이었습니다. (아니면 삼국시대 전 마한과 접해서 대마라고 불린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것을 일본에서 그대로 차음해 쓰시마라고 부른다고 하더군요


배를 탑승합니다. 커다란 배와 연결된 위태로워 보이는 다리를 지나 의자들만 가지런히 정열된 배 한편을 걷습니다.

살며시 파도에 의해 떠밀리는 배의 흔들림이 느껴지더군요. 배에 탑승한 게 실감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요란한 굉음을 울리며 배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서서히 일본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더군요.











날씨가 화창해서인지 심한 출렁임 없이 목적지 이즈라항에 도착하더군요.

2시간 동안 무료하고 기나긴 여정 끝에 도착했기에 다 끝난 줄 알았지만 제 생각과는 정 반대였습니다.

입국 절차... 입국 절차가 문제였습니다.

입국 심사대에서 하는 일은 간단했습니다. 양 엄지의 지문과 검문대에 얼굴 사진을 찍은 후 통과하면 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간단한 일을 하기 위해 440명이나 되는 사람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문제였습니다.

끝 쪽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에 입국 절차를 하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은 1시간 정도 요구되더군요.











그리고 입국 절차를 마치고 볼 수 있는 광경...! 그토록 꿈꿔왔던 이즈하라 시내의 모습입니다.

"센과 치히로"에 나오는 광경처럼 일본 주점과 매점들이 줄을 서고

일본인들이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누비며 "곤니찌와"를 쉽게 들을 수 있는, 그런 일본에 말입니다.

그러나 이즈하라는 제 생각과 달리 죽어버린 마을처럼 잔잔한 물결에 같이 온 여행객의 발걸음밖에 들리지 않더군요. 

여기가 일본이 맞나 순간 어안이 벙벙해집니다.












하지만 아무리 조용하고 죽어버린 마을 같지만, 일본은 일본이더군요.

깔끔하게 정열된 도로 가운데 수로가 파여 있습니다. 수로 옆 가드레인에 일본 풍 그림이 줄지어 있고요.

그림 속에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일본식 댕기머리에 맨발로 서 있더군요. 만화에서나 나올 듯한 전통 옷 차림새입니다. 

그림을 하나 둘 뚫어져라 보니 뭔가 이상하더군요. 이상하지 않아야 정상이지만 그림에 어느 장난도 가해지지 않았습니다.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국격을 떨어뜨리는 갖은 장난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나 이즈하라 내에서는 그런 광경을 볼 수 없었습니다.










도시락을 일본어로 벤또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에서는 도시락 문화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발달돼 있는데요.

우리나라 고려가 건국될 때부터 밥을 도시락 통에 넣어 다니는 것이 일반화 돼 발전했다 합니다.(심지어 집에서 도시락을 먹을 정도)

그래도 여행객인만큼 우리는 벤또를 안 볼 줄 알았지만 배에서 내리자마자 처음 간 음식점부터 도시락 통에 밥을 넣어줍니다.

 정성을 다한 밥과 튀김 어묵과 계란이 정말 맛있어 보이는군요.

(일본 식단에 대해서는 추후 언급하겠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수선사(슈젠지)라는 곳입니다.

이곳에 을사조약에 반발해 의병 운동을 일으킨 최익현 선생의 순국비가 있다고 하는데요.

그러기 때문에 한국인이 더욱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합니다.

(다만 저는 별 관심이 안 가더군요...)

성처럼 층층이 돌들로 쌓인 곳 계단을 오르면 수선사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다만 눈에 띄는 건 앞 가리개를 착용하고 있는 부처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부처님은 모두 절 안에 고이 모셔 있는데요. 일본 절에 석상은 (부처인 것 같습니다.) 밖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맞고 있더군요.

키는 2살~3살 아이의 키에 불과하던데 어린 부처라서 아직 절에 들어가지 못하고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일까요?

아담한 절이 인상적이었던 수선사였습니다.

(사실 많은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두번째로 찾은 곳은 "니카라이" 기념관이란 곳입니다.

현 5천엔 지폐에 그려진 유명한 여류 소설가 "히구치 이치요"의 스승이 바로 "니카라이"인데요.

스승을 존경하는 기념관이 세워지다니요. 우리나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을 해보면 저는 이것이 옳다 생각 드는군요. 그 어느 세상에도 뿌리 없는 멋진 나무는 없으니까요.  

제자가 위대하면 스승까지 칭찬하는 일본인의 사고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일본 전통 집 구조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겨울철이 춥기 때문에 한번 불을 짚히면 오랜시간 방안이 따뜻해 지는 온돌방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와 달리 훨씬 남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춥지 않아 온돌방이 필요없었죠.

하지만 섬나라의 문제는 역시 우기와 과도한 습도였습니다.

그 때문에 등장한 게 바로 다다미방.


니카라이 기념관에서 다다미방에 앉아볼 수 있었습니다.

방에 엉덩이를 가까이 하자 벌써부터 차고 건조한 기운이 스며 올라오며 굉장히 건조한 바닥이 느껴지더군요.

습한 일본 대륙에 다다미방이 정말 일본 문화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날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팔번궁신사 (하치만구) 였습니다.

동산 앞에 조그마한 문으로 장식된 신사는 제가 생각하는 신사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요.

항상 야스쿠니 신사 때문에 듣게 되는 신사라는 단어는 굉장히 혐호하고 꺼려해야 하는 대상으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팔번궁신사는 마치 한국에 절과 비슷하게 각종 비석과 기와집이 친근하더군요.











볍게 일본에서 추앙하는 신이라는 개념부터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오래 전,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기이하게 변하는 자연현상에 대해 항상 의문을 품어 왔죠.

하지만 그 시대 사람들에게 자연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신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토테미즘이나 애니미즘, 샤머니즘과 같은 원시신앙이 생겨나게 되었는데요.

그러한 사실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본은 원래 나무나 산, 혹은 큰 바위 등에 신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 사상을 띠었습니다.

그러다가 불교가 통일 신라로 넘어와 한참 성행할 무렵 일본 역시 강력한 중국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데요.

그떄 일본은 자신들의 신이라는 개념에 대해 비교를 하면서 크게 자각하고 불교의 절에 대응하는 신사라는 것을 세웁니다.











일본이란 나라의 사람들은 이상한 성질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새로운 면이 옳다 생각하면 완전히 새로운 면으로 탈 바꿈하는 반면

일본 사람의 경우 새로운 면이 등장하면 그것에 대해 방어 기질이 생겨 자기화를 시키는 것입니다.

충분히 새로운 면에 대해서 자기화를 시킨 후 옳다고 생각하는 면이 있으면 받아들이고 배타적인 것은 버리는 것이죠.


우리나라의 경우 불교를 정치 수단의 도구로서 장려하고 모든 면을 받아들였는데요.

일본의 경우 신도라는 원래 믿음 위에 불교라는 틀을 새로이 덧붙이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후에 유교 문화가 들어 올 때도, 기독교 신앙이 들어올 때도 적용되는데요.

전부 신도라는 개념 위에 덧씌워진 것이기 때문에 일본인의 기본 마인드는 신도가 배경임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일본 신도라는 것은 참 우스운게 불교의 석가나 기독교의 예수처럼 단일한 신이 있지 않습니다.

신도의 신을 가미라고 부르는데요. 이 가미는 창조자가 아닙니다. 가미와 인간은 별 다를 바 없는 존재라는 것이죠.

가미는 유일신이라는 개념과 달리 생전에 인물일 수도, 사후에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죽으면 그 사람이 가미가 될 수도, 존경하던 선생님이 죽으면 그 사람이 가미가 될 수 있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아주 친한 옆집 아저씨의 느낌과 비슷합니다.)


어쩌면 지금은 이 신도라는 개념이 공동체의 문화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신사가서 예배드리는 일본 사람들은 자신이 어느 가미에게 인사 드리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가미는 현실에 있고 그렇기에 가미와 함께 있는 일본인은 현실을 중요시 한다......













오른쪽 계단을 조금 올라가면 위의 차디찬 글자가 새겨진 비석이 나오는데요.

일본인에게는 친숙한 가미일지라도 한국인에게는 조금 기분 나쁜 음산한 길을 걸으면

무당의 핏빛 옷처럼 붉은 실이 매달린 집이 나옵니다. 줄 끝에는 이상하게 생긴 방울이 달려 있고요.

일본인은 신사에 와서 의례로서 소원을 빈 다음 저 줄을 세 번 정도 흔든다고 하는데요.

여행오면 이상하게 변하는 미미! 당연히 그 행위를 해봤습니다.

그런데 살짝 느낌이 오묘한 게 무섭더군요.

(신사의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흔히 아베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할 때마다 언론에서 언급하고 하는데요.

그 이유가 야스쿠니 신사라는 것이 제2 차 대전의 전범들을 기리는 행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볼 때 아니면 중국 외 전쟁에 피해국들이 봤을 때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전쟁을 옹호하는 매우 부적절한 것인데요.

그에 반면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도쿄에서 가장 큰 신사로서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을 모시는 당연한 신사라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일본의 문화를 이해해야 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부도덕적인 것 같고.

참 판단하기 힘들군요.










(그 외 조선 통신사 박물관에도 갔습니다.)

1800년 이전 일본이 조선에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통신사를 파견했는데

그것에 대해 수많은 자료들이 있더군요.


(조선통신사 박물관 왼쪽으로 수로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 절이 있고 다음 날 포스팅 할 커다란 나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