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의 여행/부산 여행

2018.4.21. 부산 박물관 탐방기

★☆ Mimi ☆★ 2018. 11. 4. 16:08

 

 

 

솔직히, 어렸을 적 박물관이란 가치가 전혀 없어보이는 사용 불가능한 물건을 잔뜩 모아놓고 전시해 놓은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 연관성이 있고 절대 제가 사는 이 세상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닌

무수한 시행착오와 오차를 겪어 발전을 거듭해 지금 세상이 이뤄진 것을 깨달았을 때.

과거 없이는 현재가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이제는 박물관이 존재하고 박물관에 가야만 하는 이유가 느껴지더군요.

시간을 내어 UN기념공원 인근에 위치한 부산박물관을 방문합니다.

 

 

 

 

 

 

 

 

 

부산을 소개하는 "부산! 부산 사람들!" 글에도 나와 있듯,

사실 과거시대(통일신라, 고려, 조선)의 부산은 현재 기준 행정구역상, 시군구 중 구에 해당할 정도로 작은 포에 불과했습니다.

(부산은 원래 당시 지방제도 부목군현 중 동래현, 동래군으로 불렸습니다.)

(동래성(동래역 인근), 부산진성(좌천역 인근), 다대포진성(다대포항역 인근), 좌수영성(수영역 인근), 금정산역(부산 금성동 인근)에 사람이 조금씩 모여 산 듯합니다.)

 

부산이란 도시는 원래 일본으로 통행하거나 일본을 감시하는 일종의 우리나라 최하단부 관문같은 곳이었습니다.

메이지유신(1868) 전까지 일본은 무신정권(1170~1270) 시기의 우리나라 고려시대와 비슷하게,

덴노(천황, 최고지배자)가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쇼군(대장군, 천황의 장군)이 나라를 지배하는,

다이묘(영주) 밑의 문신이 아닌, 무신(사무라이)이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하는 나라였기에,

문과를 중요시 한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히 일본을 천대하고 교역을 기피해,

부산 내의 항구는 발전 대상에서 제외되고 소홀해 질 수 밖에 없었는데요.

 

(일본열도가 통일된 것도 16세기후반(1590 추정)이 최초입니다.)

(이 후 자국 내 무신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1592)을 일으킨 것이고요.)

 

 

 

 

 

 

 

 

 

그러나,

윤요호사건(1875) 및 강화도조약(1876) 후 부산은 일제의 영토확장과 수탈을 위한 국제 무역항이자 전진기지로서

일제의 막대한 자본에 의해 항만부터 도로, 철도까지 어마어마하게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연 일제에서 조선으로 향하는 물자가 대부분 모이는 곳이 부산이다 보니 사람 수도 어마어마하게 늘어났구요.

(실제로, 지금 부산의 대부분(부산항, 자갈치시장 등)은 일제 강점기(1910~1945)에 조성(매립)된 장소입니다.)

 

 

 

 

 

 

 

 

 

(※ 참고로 부산의 인구수 증가에는 6·25 전쟁도 한몫합니다. 피난민이 최종적으로 몰린 곳이 부산이었거든요.)

(대표적으로 감천문화마을 달동네가 이 때 형성된 마을에 속합니다.)

 

부산이란 도시가 한순간에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다 역사적인 과정을 거쳐 이렇게 탄생한 것임을 알 수 있었는데요.

어쩌면 부산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이륙한 문명 대부분이 과거로부터 배운 지식을 이어 받아 이룩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걸어다니는 도로뿐만 아니라, 건물, 어쩌면 이 도시 형태까지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인데

박물관이란 그런 과거로부터 발전된 것을 기록하고 관리하며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소중한 장소이기에

꼭 박물관에서 오셔서 보고 듣고 배워야 할 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