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공원에서 돌아오고 난 후 오후에는 경복궁으로 향합니다.
이유는 창경궁과 비슷하게 화려한 불빛들로 수놓을 경복궁 야간 개장 때문인데요.
사진사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이를 놓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 움직이기 힘들지만 이런 순간에도 사진사라면 가야지요!
창경궁이 왕후를 위해 만들어진 화려한 궁이었다면
경복궁은 조선 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첫 번째로서 으뜸가는 궁입니다.
그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안쪽에 당시 최고 기술들을 총 동원해 만든 경희루가 있고
그 외에도 다양한 궁궐들이 묵직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다른 궁궐들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때 불타고 일제시대에 지위가 격하되는 등 흑역사가 있는 가슴 아픈 곳이기도 합니다.
본 경복궁을 들어가기 전, 국립고궁박물관이라는 전시관이 옆에서 조그맣게 개장했더군요.
원래 이 박물관도 야간에는 운영 안 함이 원칙이지만 경복궁 특별 야간 개장 만큼은 환히 불을 켜 뒀습니다.
이곳에서는 경복궁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한 시간 남짓 만에 다 알아볼 수 있는데요.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분이라도 들르는 것을 추천합니다.
(총 3층으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들어가자마자 볼 수 있었던 것은 왕의 태입니다.
태라는 것은 왕자가 태어나기 전에 머무르던 어머니 태반의 모든 것을 가리키는데요.
얼마나 왕의 권한이 대단했으면 심지어 탯줄까지도 6명 남짓의 관리병이 지키고 있었을까요.
아직 권력의 힘을 느끼지 못 할 정도로 성장하지 않아서인지 저로서는 상상이 잘 안 가더군요.
조선이 1894년 갑오개혁을 실시한 후 신기한 외국문물이 마구 들어오자
개혁의 필요성을 깨닫고 점차 구형 문물에서 벗어나 하나 둘씩 바꾸기 시작합니다.
그 때 본인을 확인하기 위한 인감이라는 것도 도입하고 화폐라는 개념도 도입하기 시작했죠.
물론 고궁박물관에 이것 외에도 다양한 (병법, 절차, 무기 등)
것들이 있었지만 가장 제 눈에 띄는 것이었습니다.
1900년대에도 여권이라는 게 존재했다니 믿겨지지 않습니다.
물론 1883년 보빙사 1876 수신사 등이 있어 외국에 갔다는 것은 짐작했지만 여권이라는 개념이
그 당시에도 존재했다는 것은 저에게 실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래는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우리나라 황제(임금)의 도장입니다.
물론 고종(1852-1919) 말에는 임금의 권한이 불면 날아갈 정도로 허약했지만
그래도 저런 무게감 있는 도장을 갖고 있을 정도였다니.
임금이라는 직책이 얼마나 높은지 감히 상상히 안 갑니다.
이 그림은 고궁박물관 한 벽면을 가득 매우고 있는 경복궁과 창경궁 외 도합 5대 궁궐을 그린 그림입니다.
그동안 저는 옛 미술품하면 현실과 동 떨어진, 현실감 없는 그림들이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인물을 그리더라도 기교가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작품이 엉망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궁궐 그림은 제 생각이 잘못됬다는 것을 알려줬습니다.
너무나도 정교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각종 다양한 기교들로 묘사가 돼 있더군요.
(고궁 박물관에 이것들 외에도 다양한 것이 많습니다.)
(홍례문)
시간만 있다면 반나절 이상 머무르고 싶었으나 그러할 수 없는 것이
야간 개장은 10시까지 시간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가 경복궁 야간 개장에 절반도 구경 못하고 나올 것만 같아 황급히 흥례문을 통과합니다.
홍례문은 광화문 다음으로 궁궐을 지키는 문으로서 색색으로 칠해진 아름다운 벽면을 갖고 있습니다.
홍례문을 지나면 영제교라는 다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창경궁에 옥천교처럼 그다지 크지 않는, 물이 잔잔하게 흐르는 수로 위의 다리인데요.
그 다리 넘어서 파란색과 빨간색 한지로 만들어진 등불이 은은하게 길 양쪽에 펼쳐져
마치 영화속의 한 세계에 온 것 같아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영제교 - 근정문 방향)
경복궁 안에서 가장 처음 만날 수 있는 영제교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나가면
두꺼운 중압감으로 관광객을 짓누르는 근정문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남 보는 이 아무도 없는 대문이지만 억누르는 무게를 견뎌 근정문을 지나치면
길 옆에 이름 모를 각종 비석들을 볼 수 있는데요.
이 비석들은 혹시 옛 임금 밑의 신하들이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신하들 사이를 위풍당당 걸었던 임금의 풍채는 감히 논할 수 없겠군요.
(근정전)
경복궁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가장 거대하고 압도적인 건물인 근정전!
바르고 근면하게 정치하라는 의미의 건물인데요. 조선 왕실의 핵심 건물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궁에 다가가며 마치 제가 조선의 한 임금의 밑에 다가가는 것만 같아 계속 머리를 쪼아릴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만큼 거대하고 막강한 분위기를 풍기는 근정전입니다.
(경회루)
경복궁을 총 망라해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이 자자한 경회루입니다.
처음 경복궁이 막 탄생했을 당시에는 경희루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당시 지반 서쪽이 기울 즈음에 노비 출신이지만 기술을 인정받아 종 1품 벼슬(2/18 등급) 까지 오른 분이
땅이 습한 것을 염려해 연못을 만들었고 그 가운데 경희루라는 쉼터를 지었다고 합니다.
각 조선의 왕들도 이곳에 오면 감탄을 금치 못 했다고 하는데요.
지금 현 시대에 사는 저희가 와도 그러는데 조선시대에서는 이게 얼마나 대단해 보였을까요.
물방울 한방울이라도 떨어지면 커다란 파동이 수시간 가시지 않을 듯한 잔잔한 파면에
경회루는 그 자태를 뽐내며 당당하게 서 있었습니다.
정말 아름답더군요.
(강녕전)
경회루를 감상한 느낌 그대로를 최대한 간직하고 싶어 사진을 찍은 후 강녕전에 갑니다.
경복궁 구경 시, 그곳이 요란하던데요. 이유는 특별히 초청된 공연 때문이었습니다.
"경복궁의 밤을 열다." 라는 이 공연에서 제가 본 것은 마지막에 북 춤이었습니다.
10명 남짓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미녀들이 일사불란하게 장단을 맞춰 춤을 추는데
마치 하나로 포개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움직임이 똑같더군요.
그들의 현란한 춤사위는 제게 박수를 연발하게 만들었습니다.
(정말 멋지더군요.)
(at 근정문)
경복궁을 나와야 할 10시가 다 되었어요. 마지막으로 경복궁을 나오기 전
가장 경복궁에 핵심이 되는 건물의 앞 문, 근정문에서 근정전과 홍례문을 사진으로 담아 봤습니다.
불빛이 찬란하게 길을 비추는데 그 길 사이에 어떠한 흔들림 없이 자리잡고 있는 경복궁은
오랜 조선의 역사를 다 간직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아요!
(광화문)
흔히 우리는 서울 앞 거리를 광화문 거리라고 합니다.
근정전이 가장 큰 경복궁에 건물이었다면 광화문은 경복궁에서 가장 거대한 문입니다.
근정문의 경우 단순히 근정전 앞이라는 이유로 우리를 무겁게 짓눌렀다면
이 광화문은 보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그 거대함 때문에 접근조차 불가할 정도로 저를 초라하게 만듭니다.
가운데 2층짜리 기와로 만든 문을 기준으로 양 옆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밀하게 내려앉는 성문은
가히 우리나라 최고의 보물이라고 표현해도 부족할 정도입니다.
(광화문 앞 거리)
광화문 앞에는 서울의 모든 주된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 온갖 휘황찬란한 불빛들이 가득한 서울 주된 거리입니다.
은은하면서도 강렬한 빛들로 치장된 경복궁을 보고 또 이 광화문 거리 앞에 나오니
왜 이리 가슴이 울렁이는지...(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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