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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의 여행/서울 여행

2014.11.5 서울 면접기 - 국립중앙박물관 (1)

by ★☆ Mimi ☆★ 2014. 11. 5.





6일은 서울직 9급 면접 일입니다. 면접을 보고 곧바로 집에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바로 전날 5일에 저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곱씹을 겸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는데요.

국립중앙박물관, 과연 거대하더군요. 국립이라 그런지 서울에 있는 여타 다른 시립 박물관에 비해서

 내용 면에서도 풍족하고 규모 면에서 웅장함을 느꼈습니다.











이촌 역에서 내려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따로 운행하는 에스컬레이터를 지나 올라가면

호수 앞 정자를 지나 멀리 길쭉한 건물 한 채가 보입니다.

바로 국립 중앙 박물관입니다. 박물관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만큼 아름다운 미관을 자랑하는데요.

건물은 왼쪽 오른쪽 나뉘어 있는데 오른쪽이 주된 전시관이고 왼쪽은 특별 전시를 하는 관 같더군요.












들어가는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원형으로 돼 있는 천장에 구 모양으로 깍듯이 놓여있는 벽면을 보면

일반적인 건물들과 달리 보통 건물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주된 전시실은 1층에 밀집해 있습니다. 2층부터는 문예물이던가 외국 문물이 전시돼 있습니다)












옛날 구석기 시대(약 100만년 전) 인류에게는 별다른 무기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칼이나 활이 없어서 곰과 같은 크나큰 짐승들에게 잡아먹힐 수밖에 없었죠.

그런 그들이 가장 처음 무기로 사용했던 것은 바로 바위에서 떨어져 끝이 날카로운 주먹도끼라는 것입니다.

주먹에 쥐고 날카로운 부분으로 적을 제압하기에 단순하고도 좋은 도구였죠.

(물론 그들도 불을 사용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동굴에 모여 살거나 막집(막 지은 집)에 살았는데 그런 그들도 99만년이라는 시간을 지내는 동안 점점 깨닫기 시작합니다.

 바위에서 떨어져 나간 날카로운 돌 - 주먹도끼도 점점 갈아서 더욱 날카롭게 만들고 동물의 가죽을 그냥 입었다면 점점 가공해서

옷 위주로 만들기 시작하고요. 그러다가 신석기 시대(1만년 전)에 접어들게 됩니다.

신석기 시대 들어 가장 큰 주목해야 할 점이라면 주거 생활의 변화였습니다.

그 전에는 산에서 채취나 사냥 등 이동생활을 하며 생존했지만

신석기 시대부터는 해안가에 거주하며 바다와 인근 밭에서 얻은 음식으로 정착생활을 한 것이죠.










아무래도 정착 생활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인류의 깨달음 때문이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이동생활을 통해서만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해안가에 정착 생활을 하며 조, 피, 수수 등을 경작하니까

부족했던 식량이 남아 돌게 된 것이죠. 그에 따라 사람들은 남은 먹거리를 보관하기 위해 그릇이라는 것을 만들게 됩니다.

위의 사진은 바로 신석기 시대의 그릇, 일명 "빗살무늬 토기"입니다.











이제 먹을 것이 풍족해지자 사람들은 다른 것에 눈독 들이기 시작합니다.

"좀 더 우리가 쥐고 있는 무기들을 편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부터 시작해서

"사람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철학적인 사고까지요.

그에 따라 문명은 급속도로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반드시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계급이라는 것인데요.

점차 부족이 커지며 정복전쟁을 하게 되고 결국 전쟁에서 진 사람들은 노예로 살게 됨에

계급이라는 개념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이제 돌 등의 무기가 아닌 청동기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청동기는 어떻게 보면 돌 보다 가볍지만 훨씬 약한 재료였습니다.

당연 무기로서, 혹은 농기구로서 역활은 할 수 없었죠. 다만 이것들의 가장 큰 역할은

지배 계급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화려하고 반짝이는 이런 재료들은

부족장 밑에 있는 하급 계층에게 충분한 위엄으로 다가왔죠.

(그러나 아직까지 실제 무기는 돌칼이었습니다.)











고조선이라는 나라는 기원전 2333년 청동기 시대에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194년에 위만이 철을 조선에 가지고 와 위만조선을 만들었죠.

그에 따라 또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청동기가 제일 강한 줄 알았지만 그보다 훨씬 강한 철이라는 것이 존재했던 것이죠.

게다가 철은 청동기처럼 희귀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조금만 살펴봐도 쉽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죠.

이로써 인류는 또 한번 거대한 발전을 합니다.

농업이나 무기에는 청동기를 쓸 수 없었지만 철은 어느 곳에나 사용할 수 있었기에

모든 면에서 삶이 풍족해 진 것이죠.

 










한무제를 들어 봤나요? 주 왕조는 각 영토별로 영주가 머물게 하는 봉건주의를 기반으로 한 나라였습니다.

그런 봉건주의는 오래가지 못하고 춘추전국시대(BC 8~ BC 3)에 이르게 되는데요.

약 500년간의 분열 속에 마침내 춘추전국시대는 진나라의 통일로 하나가 되게 됩니다.

그러나 진나라 황제 "진시황" 은 만리장성을 쌓고 생로불사약을 찾는 등 백성들을 피곤하게 하는 일을 계속하다 결국

사망하며  (BC 210년) 진나라는 또다시 분열합니다. 이 분열기에 바로 역사적인 인물 유방과 한우가 등장하는데요.

유방과 한우는 패권을 두고 서로 다투다가 결국 유방이 전투에서 이기며 한나라를 건설하게 됩니다.


한무제는 한나라의 7대 왕입니다. 그는 중앙집권체제를 완성하고 BC 108년에 고조선을 정벌하지요.

고조선 정벌 후 반도에는 부여와 고구려 옥저 등이 나오게 되는데요.

위의 사진은 그 당시에 악기와 글을 사용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진입니다.












한 때 요동과 만주 땅 대부분을 차지했던 고구려에서 나왔던 물건입니다.

철기가 생긴지 몇 년도 안 됐는데 벌써 상당한 예술품들이 등장하군요.

금이라는 새로운 소재가 부귀를 상징하는 새로운 물건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붓으로써 다양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사신도의 사진.

현무 거북이와 청룡 용의 모습이 눈에 띕니다.

불과 엇그제 고조선이 탄생하고 멸망한지 일만 년이 채 안된 것 같은데

벌써 통일된 신이라는 개념이 나오기 시작한 걸로 보아 철의 발견은 정말 인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듯합니다.












전에는 간신히 생활만 할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

이미 부처라는 신의 개념도 심어졌고 예술은 물론이고 하물며 죽음에 대한 것도 더욱 의식하여

묘를 만드는 등 예식을 차리기 시작했으며, 무기라는 것도 더욱 발전했음을

이미 삼국시대에 충분히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 포스트 (2) 편에서는 더욱 발전된 우리나라 모습을 언급할 건데요.

청동기에서 철기로 넘어오는데 2000년이 걸렸다면 

고려시대부터 지금 2014년까지 1000년이라는 시간밖에 안 걸렸습니다. (고려 탄생 : 918년)

저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짧은 기간 동안 인류가 놀랍게 발전하는 모습이 너무 대단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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